“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주식을 다시 시작하며

“후회하지 말자.”

평소 내가 늘 가슴에 품고 사는 인생 모토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보다 다가올 미래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늘 스스로를 다잡곤 한다. 하지만 이 단단한 좌우명에 딱 하나, 예외를 둬야 하는 카테고리가 생겼다. 바로 ‘주식’이다. 주식이라는 세계는 참 묘하게도 인간의 후회와 기쁨이라는 양면성을 가장 극적으로 가득 품고 있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싶다. 주식의 차트는 비극과 희극을 오가며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니 말이다.

2008년 러시아 펀드의 쓰라린 기억

사회인이 되고 나서 주식이 대략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월급 외의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에 파이프라인에 관련된 책도 열심히 읽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나의 첫 투자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직장 동료의 권유로 펀드를 가입하러 은행에 갔다. 은행에 가서 은행원이 추천해준 몇 개의 펀드가 있었는데 그 중에 ‘러시아 펀드’가 있었고, 그 시기는 무려 전 세계 금융 시장이 뒤흔들렸던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중심 ‘2008년이었다. 얼마 되지 않던 월급으로 쪼개 넣던 거였는데 겁이 많던 20대 초반 시절이라 당연히 마이너스 수익을 내고 해지를 했다.

세계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지도 모른 채 남의 말만 믿고 들어간 대가는 쓰라렸다. 매일같이 내려가는 잔고를 보며 첫 마이너스의 혹독한 경험을 마쳤고, 나는 펀드나 주식 같은 재테크에는 평생 눈길조차 주지 않겠노라 다짐 했었다. 나에게 주식은 그저 위험한 도박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다 몇 년 후,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식을 1주라도 계좌에 보유하고 있으면 개인 신용도를 관리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정보였다. 금융 문맹이었던 나에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흥미로운 사실을 계기로, 나는 두려움을 조금 내려놓고 10만원도 안 되는 아주 소소한 소액으로 직접 투자를 다시 시작해 보았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과거 펀드에 돈을 묻어두었을 때와 달리, 매일 주가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와중에도 마음의 요동이 크지 않았다. 누군가의 권유나 휩슬림이 아닌, 온전히 ‘나의 결정’으로 기업을 고르고 움직인 투자였기 때문이리라. 투자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니, 오히려 시장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덤덤하고 차분해 졌다.

뜨거웠던 공부의 시간, 그리고 육아로 인한 공백

그 작은 성취감을 시작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정말 열정적으로 투자에 몰두했다. 매일 아침 경제 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세상의 흐름을 읽으려 애썼고, 뉴스를 챙겨보며 산업의 동향을 파악했다. 그러면서도 주식 관련 서적을 빌려보며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는 단어를 보며 기술적 분석 공부도 치열하게 이어갔다.

공부하는 재미가 붙으면서 자연스레 투자 금액도 조금씩 늘려나갔다. 다행히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지, 공부한 효과가 수익률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안목이 맞았다는 기쁨과 자산이 불어나는 재미가 동시에 찾아온 행복한 시기였다.

하지만 삶의 커다란 축복인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서 나의 일상과 투자 환경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주식을 치열하게 공부하고 들여다 보던 시간은 고스란히 육아와 가정을 돌보는 시간으로 대체되었다. 매일 쏟아지는 육아의 피로 속에서 경제 신문을 읽거나 차트를 분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사치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주식 시장과 멀어지게 되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 되었다. 가끔 문득 “그 때 아이를 키우면서도 끈을 놓치 않고 조금만 더 주식을 붙잡고 있었다면, 지금 쯤 남 부럽지 않은 살짝 부자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마음에 스치기도 한다. 과거에 내가 찍어 두었던 종목들이 올라있는 것을 보면 미련이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은 미련 없이 뒤로 접어두기로 했다.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단단해 졌고,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말이다.

남편의 든든한 지지, “금액을 키워봐”

그 동안은 혹시라도 내가 판단을 잘못해서 마이너스 수익이 나면, 피땀 흘려 일군 우리 가정 경제에 피해가 갈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한동안은 주식을 하더라고 그저 가끔 내 커피 값이나 아이들 간식비 정보를 버는 ‘용돈 벌이’ 수준으로만 작게 유지해 왔다. 철저하게 방어적인 투자 패러다임 안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가장 가까운 아군인 남편의 심경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요즘 주위에서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은지 나에게 “이제 투자 금액을 조금 더 키워서 잘 굴려봐” 하며 권한다.

내가 주식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내비친 적도 없었지만 가정의 경제를 함께 책임지는 배우자에게 이토록 확실한 지지와 응원을 얻으니,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이 사그라들고 든든함이 그 자리를 채운다.

아쉬웠던 과거의 기회비용은 깨끗하게 털어버리려 한다. 이제 든든한 지원군도 곁에 있으니, 나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책임을 믿으며 다시 한번 즐겁게 재테크의 신반 끈을 묶어보려 한다. 다시 시작할 나의 투자 여정에는 비극보다 희극이 더 가득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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